가깝고도 먼땅, 개성탐방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속초시협의회
문화예술분과위원장 노광복
개성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경기도 파주시 모처에서 1박을 하고 조식후 오전 7시에 버스로 남측 출입사무소까지 가는 동안, 개성은 참 멀다는 생각을 했다.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심리적 거리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통일문을 지나 임진강 다리를 경유,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하여 발권 및 출장수속을 마치고 현대아산 버스로 바꿔타는 과정이 참 멀고도 지루했다.
서울에서 출발한후 1시간 남짓의 거리. 남북측 출입사무소(세관)에서 보내는 1시간을 포함해도 2시간이면 넉넉하게 도착하는 땅, 그 개성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가까웠다.
그곳까지 가는 동안 이른 아침이라 교통량은 아주 한가한 편이었고, 날씨는 흐린날씨에 짙은 안개가 엷게 깔려있어 다소 음산한 날씨였다. 근간 북한 노동신문에 기재된 논평에서 '반통일적 망동' '이명박 역도', '용납못할도발' 과 같은 온갖 험악한 말을 동원하여 남한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시간을 통해 보고 듣고 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심리적 상태에서 개성직할시 판문군 평화리 경계선 출입문을 통과하는 순간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착잡한 심정에 놓여졌다.
분단의 비극을 통해 60여년 가까이 북진통일, 멸공,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은 나로서는 표현할수 없는, 그리고 부모 형제들과 생이별한 6.25가 가져다 준 역사의 잔해앞에서 멍하니 평화리 마을에 펄럭이는 남과 북의 국기를 바라볼 뿐이었다.
수속을 마치고 승차하는 동안 출입사무소에서는 노래 '반갑습니다'가 힘차게 울려퍼졌고, 복장을 단정히 한 북한 군인들이 엄격한 자세로 우리를 맞아 주는 듯 보였다.
개성으로 출발하기 전 사복으로 정장을 한 30대의 젊은 안내원 2명이 승차하여 자기들을 소개하고 발차한 후 송악산과 만부교, 통일거리를 설명해주고는 '고향의봄' '어머니의 행복'노래 두곡을 자청하여 불러주어, 차 안 분위기를 즐겁고 밝게 해 주었다.
도라산 역을 지나 평양으로 가는 개성고속도로를 달리며 개성에서 16km지점에 위치한 '박연폭포'와 '관음사'로 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산천을 돌아볼 수 있었다. 차창 너머로 헐벗은 민둥산과 비탈지고 메마른 밭이 스쳐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남한의 들녘과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가는 도중 안내원은 관광지의 내력과 관광객이 지켜야 할 주의사항, 개성공단의 설립목적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안내원의 목소리는 상투적인 억양의 말투가 아닌 표준어에 근접한 부드러운 말씨로 듣는 우리들에게 다정다감한 인상을 주었다.
모두 460명이 13대의 버스를 나누어 탄 우리 일행을, 앞에서는 2대의 선도차가 후미에서는 안전요원(북측의 보안요원)의 차량이 인도해 주었다. 내가 탄 차량은 7번째에 위치하여 산 굽이굽이를 돌때마다 앞뒤의 차량을 한눈에 나누어 볼수 있었으며, 그 모양이 마치 기차행렬이 S 자로 굽어 돌아가는 모습과도 같아 보였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10여분간 걸어 언덕에 오르니 박연폭포가 한눈에 들어왔다.
다리를 건너니 폭포동쪽 언덕에 위치한 범사정(정자)이 눈앞에 들어왔다. 이 정자는 개성 박연리에 있는 조선시대 건물로 폭포를 옆에 끼고, 대흥산성 북문으로 오르는 언덕길 중턱에 고고한 자태로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박연폭포 입구에 놓여있는 대형비문이 박연폭포의 웅장함을 時로 써놓은것인줄 알고 기대감에 읽어보니 온통 김일성부자에게 충성을 맹세한 붉은 문구였다.
범사정(정자)옆의 표석에도 붉은 글씨로 '위대한○○○수령께서'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 하루빨리 저 유구한 전통의 문화유산에 새겨진 붉은 글씨가 지워지길 바라는 희망을 가져 보았다.
박연폭포 앞에 다가서니 두 둘기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마치 선비의 한복 옷고름이 흘러내린 것처럼 고상함마저 풍겼다.
女안내원의 설명에 의하면 박연폭포는 우리나라의 3대 폭포중 하나로 천마산과 성거산에서 흐르는 계곡물이 모여 연못(고모담)을 이루는데 그 높이가 37m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박연폭포는 개성의 3대 명물인데 나머지 2대 명물은 조선 중종시기의 기생인 황진이와 조선 중기의 학자로 유명한 화담 서경덕이라며 이들에 얽힌 이야기도 맛깔나게 전했다.
우리 일행은 박연폭포를 배경으로 하여 개인사진은 물론 단체로 속초 평통자문회의가 개성을 방문하였다는(평화통일기원 개성탐방)기념 현수막을 펼쳐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념촬영에 임하였다.
안내원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개성시 7개 성의 하나인 대흥산성 북문이 역사를 말해주듯 무게 있는 늠름한 자세로 우리 일행을 반겨 주었다.
산성굴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오른쪽 언덕에 '관음사대궁전'이 그 단아한 자태를 드러내며 눈앞에 들어왔다.
'관음사'는 박연폭포(선폭)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古色을 띤 일천년의 역사를 지닌 고찰이었다. 바삐 오르다 보니 목이 갈하여, 관음굴에서 흐르는 약수를 쪽박으로 조심스레 떠 마시고 서니 그곳에는 나의 가슴 높이의 관세음보살좌상과 불전함이 놓여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불전함 안을 들여다보니 원화와 달라가 소북히 쌓여 있었다. 달라 위에 김정일과 스님이 겹치면서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고픈 마음에 대흥산성 북문 중턱을 한걸음에 올라 골짜기를 내려다보니 오르고 내려가는 색색의 관관객 행렬이 마치 바늘에 오색실을 끼워 골짜기를 누비는 듯한 율동적 생동감 마저 주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예정된 시간에 따라 주차장에 집결하여 개성시 남대문 뒤편에 있다는 통일관으로 중식을 하기 위해 11시 40분 이곳 폭포에서 오던길로 출할하였다.
우리가 돌아서 다시오는 이 통일로는 1992년 김일성 주석 80회 생을을 위해 5년간에 걸쳐 중장비도 없이 지역주민과 군대가 동원되어, 땀과 피나는 노동력으로 집약된 도로이다.
5년만에 완공된 개성과 평양간 6차선 도로는 170km 라고 한다. 물동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비교적 손상된 흔적이 적어 보였고 도로의 중간 분리대나 길가의 가로수는 거의 없었다. 어쩌다 심은 나무는 영양실조로 찌든 것처럼 작아보여 애처로울 정도였다.
우리 일행이 고려 500년의 역사를 지닌 도읍지, 개성직할시에 입성하여 자남산 왼편에 한옥으로 자리잡은 '통일관'에 도착한 시간이 12시20분. 2개의 연회장이 있는 통일관은 500명이 동시에 식사할수 있는 민속요리 전문점이었다.
일행의 식사메뉴는 개성정식이었는데 방짜유기(놋그롯)에 11첩 반상기(반찬)가 담기고 밥과 국은 별도로 나왔다. 옛 임금이 13첩 반상기로 식사를 했다고 하는데 우리 서민이 11첩 반상기로 중식을 했다면 아주 크나큰 식사가 아니겠는가?
나는 식사를 일찍 끝내고 '통일관' 정원 앞 언덕에 올라 직선거리로 200m남짓 정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남대문 정면과 옆면을 보았다. 옆 담장은 넝쿨에 쌓여 있었고 아래층은 석축으로 상층은 목조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태조 3년에 준공하였느데 불행히도 6.25때 소실하여, 1954년에 신속하게 복원하였다고 한다.
그 안에는 연복사종이 누각에 보전되어 있음을 볼수있는데, 이 종은 경주의 에밀레종, 오대산 상원사의 종과 함께 한반도 5대 명종중의 하나이다. 연복사종을 바라보며, 이 종의 은은한 아름다움이 남한에도 울려퍼지기를 기원해 보았다.
점심을 먹은 우리 일행의 다음 목적지는 포은 정몽주가 살았던 생가였다. 정몽주의 생가인 숭양서원은 개성문화회관 뒷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았는데, 이곳은 고려 말 충신 정봉주를 모신 사당으로 멀지 않은 곳에 선죽교와 표충비가 있는곳이었다.
서원에 들어서니 수려한 정원수와 고목들(고풍의 소나무, 목련, 대나무,잣나무)이 오랜 세월을 말해주는 양 푸르름으로 관광객을 맞이하여 주었다.
안내원을 통하여 숭양서원에 대한 역사와 내력을 듣고, 정원을 살핀후 계단에 올라 첫 뜨락에 서니 그곳에는 3채의 사당이 있었고, 또 한 계단을 오르니 단독으로 지어진 사당이 있는데 윗편 방에는 위패를 모셨고, 그 옆방에는 포은 선생의 영정을 모셔놓았다. 뜨락 건물 좌우에는 숭야서원절 이라는 실명비가 양쪽으로 세워져 있었는데 수령을 알 수 없는 오랜 향나무가 일품으로 자리를 하고 있었다.
안내원에 의하면 송악산은 어머니의 산 이라고도 하며, 대표적인 산으로 숭상하는 산이라는 뜻으로 숭산 이라 불린다. 숭양은 송악산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어 서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차량으로 이동하여 개성 선죽동에 자리하고 있는 '선죽교와 표충비'가 있는 곳에 서니 정원은 그리 고풍스럽지는 않으나 비교적 아담한 편이었고, 다리 옆 한가운데로 작은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안내원이 선죽교에 대하여 설명하고있는모습>
개성의 선죽교는 고려 태조가 919년 개성시 송도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며 1392년 포은 정몽주가 조선 태종 이방원의 일당인 조영규에 의해 쇠뭉치로 살해된 다리로 유명한 곳이다. 고려 초기에 놓였던 선죽교는 원래 선지로였으며, 포은 선생이 피살된후 그 자리에 참대나무가 자랐다고 하여 '선죽교'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선죽교(8.35m×3.36m)는 국보급 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비교적 관리가 잘되어 있다고한다. 1780년 후손들이 다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돌난간을 둘러막고 옆으로 돌판을 별도로 놓아 사람들이 건너다니게 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다리를 건너가면 선명하게 '善竹橋'라고 쓴 돌비석을 볼수있는데 이 글 또한 한석봉이 쓴 글이라고 안내원은 설명해주었다.
비각 담장 너머 은행나무를 옆으로 하고 '표충각'앞에 서니 안에는 두 마리의 거북이 등에 비석이 있는데 이는 고려왕조에 절개를 지킨 정몽주의 '忠義'를 표창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그 비석을 보니 온몸에 전율이 일며, 정몽주의 절개와 충성심을 들려주는 단심가를 떠올렸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이 잇으랴'
정몽주의 기개는 오늘을 사는 내게도 서릿발같은 경구처럼 들리는 듯 했다. 그러나 옆에 기록된 현판에는 개성시 인민위원회가 표충비를 설명하면서 고려 충신 정몽주와 같이 인민들로 하여금 왕조에 충성토록 하기 위한 설명문이 있는걸 보며 씁쓸한 생각마저 들었다.
다음 유적지인 '고려 박물관-성균관' 광장에 들어서니 좌우로 '고려 기념품상점'이 들어서 있었고 매점앞에는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은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우리를 정겹게 맞이해 주었다.
성균관은 고려 992년에 창건하여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사용해 오다가 1988년 박물관으로 개관하여, 고려의 역사, 경제, 과학 등 문화의 발전모습을 보여주는 천여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고려박물관 전경>
박물관 현관에 들어서니 놀랍게도 일백년도 아닌 일천년이 넘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오랜 세월의 유서를 말해주는 양 웅대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 나무를 보니 문뜩 경기도 양평에 있는 일천년이 넘은 용문사의 은행나무가 생각났다. 이러한 나무들은 우리들에게 중세의 역사가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있다.
잘 정돈된 담장과 정원, 수목과 잔디, 돌담길을 따라 관내로 들어가니 여느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의 유물과 유품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고, 그에 따른 설명도 깃들어 있었다.
4개의 전시관 중 한곳에는 우리가 관광 못한 영통사, 왕건왕릉, 공민왕릉, 만월대, 첨성대 등 많은 유적지를 사진을 통하여 축조한 모형도로 감상할 수 있었다.
관내에서 나와 야외 전시장에 들러 현화사 7층 석탑, 유수 연문누각, 흥국사탑, 불일사 5층탑, 개국사 석등, 민속놀이터를 구경하고 기념품점에 들러 작은 도자기 3점을 구입했다. 일행중 2분의 선배님을 모시고 개성에서 제조한 솔잎술 1병으로 기분을 달래며, 거리에 인적이 드문, 차량이 거의 없는 35만명의 인구를 지닌 회색의 도시, 동토의 땅 개성을 뒤로하고 개성공업지구로 가기 위해 차에 몸을 실었다.
개성공업지구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2000년 8월 현대 아산이 북측과 합의하여 추진을 시작한 사업으로 2002년에 착공하여 기업에 분야아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단이다.
우리들에게 실망을 준 것은 기업들이 운영하고 있는 공장 내부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우리네 식으로 잘 건축된 회사건물, 그리고 공장, 구획정리, 가로등, 여타의 시설물들이 반듯하게 자리잡았음을 확인하며 북측 출입사무소로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북측 사무소에 가까이 버스가 다가오자 하루를 함께 한 북측 오후반 안내원은 아쉬운 표정으로 '우리 다시 만나자'라는 노래를 불렀고 우리 일행은 힘차게 박수로 답례해 주었다.
현대아산 임직원들의 일사 분란한 움직임 속에 우리 일행은 무사히 남측출입사무소에 도착, 우리네 버스에 몸을 실으니 그때 시간이 오후 5시40분이었다.
나는 속초로 오는 차안에서 안내원을 비롯한 그들이 한결같이 '통일'이라는 말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통일이 되지 않고 있으니 그래야 하겠지, 통일이라는 말이라도 입에 담고 있어야겠지. 특히, 개성은 통일에 관한 한 그 당위성이 감정으로 응어리져 있을 테니까. 6.25 전에는 이남이었다가 휴전 이후 이북이 된 곳이니까. 이 과정에서 개성 사람들의 희생과 시련은 어느 지역보다도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더구나 개성은 북한쪽에는 휴전선 이남에 총과 총으로 맞서 있는 분단의 최전방이 아닌가? 어쩌면 우리 지역(고성,속초,양양)과 맞바꿔진 지역이 아닌가? 삼천리 금수강산 내 나라 내 땅도 마음놓고 갈수 없는 현실에 분노가 일었다. 조상들이 일구어 놓은 우리의 강토를 어째서 금지의 땅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박연폭포 앞에서 필자인 노광복위원(왼쪽)과 김충호 협의회장(오른쪽)>
가깝고도 먼 땅 개성 탐방은 분단된 현실을 또 한번 일깨우며 과거와 현재, 역사와 미래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낸 짧은 여행이었다.
속초시협의회 033)637-3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