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인 대통령이 바뀌었습니다. 나를 수석부의장으로 임명한 분은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 사표를 내고, 그분이 수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처리가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제 내 알바 아니라 하는 것으로 보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조직을 위해 잘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의 사표를 새 의장에게 내는 것을 양해해 주시라고 노무현대통령께 말씀드렸습니다. 노대통령께서도 내 판단에 동의하시고 양해해 주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대로 17대 대통령취임식에 다녀온 즉시 사표를 냈습니다. 금세 처리될 것이라던 것이 이렇게 두 달 이상이나 미적거렸습니다. 사표는 내고 수리는 안 된 어정쩡한 기간이 거의 석 달입니다. 수석부의장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없습니다. 내 모양새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거북하고 답답하고 유감스런 기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무처 동지 여러분, 14개월이었습니다.

동지 여러분과 함께 일한 날 수는 겨우 14개월이었습니다. 결코 길지 않았습니다. 너무 짧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짧은 기간 무언가를 만들었다고 자부합니다. 그게 바로 이것이라고 내가 답을 내 놓지 않겠습니다. 아니, 답은 하나일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답은 여러분 각자에게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김상근 수석부의장과 함께 일한 기간에 평통사무처 공무원으로서 나는 이런 것을 이미 얻었노라고 답하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나에겐 없다고 할 것입니까? 그럼 지금, 만드십시오. 아니, 지금 만드는 것이 너무 급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차차 만드십시오. 이미, 지금, 차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 것으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꼭 그렇게 해 주십시오.

민주평통의 주체는 자문위원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민주평통은 두 바퀴로 전진합니다. 자문위원이 하나의 바퀴입니다. 사무처가 또 하나의 바퀴입니다. 이륜구동조직입니다.

사무처라는 바퀴가 제대로, 옳게 작동해야 자문위원이라는 바퀴도 제대로, 옳게 작동하게 됩니다. 이 두 바퀴가 호흡이 척척 맞아야 평통이 제대로 나아가게 됩니다.

나는 17개월 전 취임하자 여러분을 살폈습니다. 함께 더불어 일할 수 있을까? 청진기를 댔습니다. 순수성이 숨쉬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일할 의지도, 능력도 충분하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길이 보이면 달릴 것 같았습니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을 찾으면 해 낼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믿었습니다. 여러분이 개혁과 청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나와 만나기 전에 여러분이 어떤 자세로 일해 왔던가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길을 함께 보게 된다면! 우리가 할 일을 바로 찾는다면! 그리고 여러분과 내가 뱃장만 맞는다면! 우리는 좋은 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 확신은 맞아 떨어졌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나와 여러분은 지금쯤, 어느새 짝이 되었습니다. 어느새 뱃장이 맞는 팀이 되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나는 지금 여러분을 믿고 있습니다.

열정을 가진 여러분을 믿습니다.

통일의지를 가진 여러분을 믿습니다.

헌신의 뜻이 가슴 속에서 살아 뛰고 있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안일과 무사를 떨쳐내고자 노력하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나는 이제 여러분 곁을 떠납니다. 그러나 내 魂과 내 氣를 여기에 내어놓고 가려합니다. 필요 없다하여 가져가라 하면 언제라도 즉시 가져가겠습니다. 그러나 그리하지 않는다면 오래토록! 아주 오래토록! 魂으로, 氣로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힘주어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우리 민족사, 우리의 통일운동사의 변두리에 있다 하지 마십시오.

이 민족 현대사, 통일운동사의 중심에 서 있다는 자부심을 여러분, 가져 주십시오.

여러분, 그 동안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김 상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