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님과 사무처 직원 여러분.

신임 사무처장 김병일입니다. 고개숙여 인사드립니다.

평생을 공직에 몸담아온 저로서는 스스로 국가와 통치권자를 위해 언제, 어디서나 혼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살아왔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통치권자의 국정철학을 구현하고, 민족의 명운을 책임지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으로 임명하신다는 통보를 받고 솔직히 말씀드려 저의 부족함과 직무의 엄중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세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군사적 긴장감이 높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업적을 이루어 낸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존경하는 이기택 수석부의장님의 지도편달을 중심으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어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수석부의장님을 비롯한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역사를 반추하면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구조가 안정적이었던 시대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한반도의 구조는 극도로 불안정합니다. 저보다 전문가들인 여러분에게 저의 이러한 주장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을 장황하게 되뇌는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도 있지만 너무나 중요하기에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한반도의 민주평화통일이 민족내부의 문제라는 낭만적 접근은 6자회담이 상징하듯이 무너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안정은 고차방정식의 해법으로만이 풀어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학에서 국제정치를 가르치는 중심에는 Case study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핵보유문제가 발생시킬 수 있는 케이스를 도출해보는 것입니다. 1. 핵보유를 인정한다. 2. 북한이 포기한다. 3. 한국도 핵보유를 시도한다. 4. 6자회담이라는 틀을 만들어 포기시킨다. 등과 같이 많은 경우의 수가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 키신저 국무장관에게 하버드에서 배웠던 분의 경험에 의하면 파키스탄문제 등의 케이스를 학생에게 제시하면, 우수한 학생은 12가지 정도의 경우를 도출하면서 이 이상의 경우의 수는 없다는 자만심을 갖는데, 놀랍게도 키신저는 매번 18개 정도의 경우를 도출해낸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이와 유사합니다. 과거 진보세력이 주장하는 민족/ 양극이라는 2차방정식으로는 절대로 풀어낼 수 없는 다극화된 여건에 봉착했습니다. 대단히 복합적인 상황에서 한반도의 문제를 풀어내야한다는 절대적 과제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앞에 놓여있습니다. 과거의 경직된 사고와 접근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일부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존재와 규모, 기능에 대해 의심하는 분들이 계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의 우려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스스로는 키신저의 유연한 사고를 지향해야하며, 창조적 두뇌활동이 왕성한 학창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할 때 민족역사발전에 동참했다고 하는 자부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저는 민주통일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런데 대통령님은 저를 이 자리에 보내셨는가를 헤아리다 ‘아하! 새로운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구나!’ 하는 깊은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 적지 않은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께서는 몸소 실천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서울시장으로 계실 때 행정직인 저를 기술직만이 오가던 도시개발부서 뉴타운사업본부장에 임명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접근이 필요로 하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공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저는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모시고 민주통일과 국제정치의 학생이 되어 새로운 접근을 제시하겠습니다.

우리 속담에 “십시일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물며 지혜를 구하는 영역에서는 도서관의 책보다 많은 분들의 관점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찌 보면 지금보다 10배 더 많은 자문위원들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많은 관점과 지혜를 유기적으로 정리하지 못하면 배가 산으로 가고, 백가쟁명으로 끝이 날 수 도 있습니다. 때문에 사무처가 존재합니다.

많은 자문위원들을 심리적으로 묶어내고, 작은 지혜라도 놓치지 않는 그물을 만들고, 이를 기능적으로 정리하여 대통령님에게 드리기 위해 저희가 존재합니다.

저는 이점을 항상 생각하고 여러분들을 모시겠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해주십시오. 제가 부족해서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과 진심으로 교감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역할을 찾아 실천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대통령님과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 3. 25